이인성 (李仁星, 1912~1950, 대구)
1922년 수창(壽昌)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8년 졸업하고 『개벽』 주최 《세계아동예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였다.
1927년 ‘영과회(零科會)’에 회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중학교 진학 대신 1928년 서동진이 경영하는 대구미술사에서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그늘(음(陰))>으로 첫 입선을 하였다.
1930년 ‘향토회(鄕土會)’ 창립에 참여 하였으며,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크레용 제조 회사인 오오사마(王樣)상회에 입사했으며, 이듬해인 1931년에 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에 입학해 1935년에 졸업하였다. 입학과 동시에 일본 수채화 연맹(日本水彩畵聯盟) 회원이 되었으며 《문부성미술전람회》와 《제국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입선하였다.
1933년 도쿄 ‘광풍회(光風會)’전에서 수상하였으며, 대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34년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가을 어느 날>을 출품해 특선하였으며, 1935년 제14회전에서 〈경주의 산곡에서〉로 최고상인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하였다.
1937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에 선정되었다. 1938년 대구 남산병원 3층에 양화연구소를 개설하고 1939년 대구에서 아루스다방을 경영하였다.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심형구, 김인승과 선전 추천작가 3인전을 개최하였다.
1945년 이화여대 미술과에 출강하였으며, 1948년 서울동화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49년 국전 심사위원이 되었으며, <국화> 등의 작품을 출품하였다.
1927년 ‘영과회(零科會)’에 회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중학교 진학 대신 1928년 서동진이 경영하는 대구미술사에서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그늘(음(陰))>으로 첫 입선을 하였다.
1930년 ‘향토회(鄕土會)’ 창립에 참여 하였으며,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크레용 제조 회사인 오오사마(王樣)상회에 입사했으며, 이듬해인 1931년에 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에 입학해 1935년에 졸업하였다. 입학과 동시에 일본 수채화 연맹(日本水彩畵聯盟) 회원이 되었으며 《문부성미술전람회》와 《제국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입선하였다.
1933년 도쿄 ‘광풍회(光風會)’전에서 수상하였으며, 대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34년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가을 어느 날>을 출품해 특선하였으며, 1935년 제14회전에서 〈경주의 산곡에서〉로 최고상인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하였다.
1937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에 선정되었다. 1938년 대구 남산병원 3층에 양화연구소를 개설하고 1939년 대구에서 아루스다방을 경영하였다.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심형구, 김인승과 선전 추천작가 3인전을 개최하였다.
1945년 이화여대 미술과에 출강하였으며, 1948년 서울동화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49년 국전 심사위원이 되었으며, <국화> 등의 작품을 출품하였다.
이인성, <석고상이 있는 풍경>, 1934
Water color on paper, 55.2x74.6cm
이인성은 ‘혜성의 등장’, ‘천재 화가’라고 불릴 만큼 당시 대구화단에서 이목을 끈 화가입니다.
이인성은 기법의 세련화와 더불어 소재, 색채, 분위기 등의 조선 향토색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다소 거칠고 대담한 묘사와 단순한 듯한 색채의 자유로운 조화는 이국적인 감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후반기부터 수채화와 유화를 함께 사용하면서 선전 출품 작품에서 점차 향토색이 강조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그것은 고흐, 고갱, 세잔 등의 후기 인상주의 양식을 한국적인 정서와 색채, 소재로 토착화시키려 한 관념적이고 주관적인 작가의 예술적 태도였습니다.
지금 보시는 <석고상이 있는 풍물>은 노란색 바탕에 붉은색 천을 깔고 여인 상반신의 나체석고상을 화면 중앙에 놓고 그 아래로 옥수수와 사과, 포도, 마늘 등이 가로로 줄지어 배치되듯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수직 구도의 안정감과 원색의 강렬한 색채 등 의도적으로 고스란히 남긴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인성은 기법의 세련화와 더불어 소재, 색채, 분위기 등의 조선 향토색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다소 거칠고 대담한 묘사와 단순한 듯한 색채의 자유로운 조화는 이국적인 감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후반기부터 수채화와 유화를 함께 사용하면서 선전 출품 작품에서 점차 향토색이 강조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그것은 고흐, 고갱, 세잔 등의 후기 인상주의 양식을 한국적인 정서와 색채, 소재로 토착화시키려 한 관념적이고 주관적인 작가의 예술적 태도였습니다.
지금 보시는 <석고상이 있는 풍물>은 노란색 바탕에 붉은색 천을 깔고 여인 상반신의 나체석고상을 화면 중앙에 놓고 그 아래로 옥수수와 사과, 포도, 마늘 등이 가로로 줄지어 배치되듯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수직 구도의 안정감과 원색의 강렬한 색채 등 의도적으로 고스란히 남긴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인성, <노란옷을 입은 여인상>, 1934
Color on paper, 75x60cm
연인이던 시절 아내 김옥순을 그린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은 정물과 인물화가 어우러진 비교적 단순한 구성과 형태, 패턴화된 색채감각과 좌우, 사선 방향의 속도감 있는 옷 주름선과 마루판, 벽면의 필치 등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벽면의 필치는 인물 가장자리를 따라 칠해지면서 단순한 벽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듯 인물의 상체를 더욱 부각하고 있습니다.
이인성, <풍경>, 1930년대
Oil on canvas, 44.5×51.5cm
이 작품은 황금빛 들판 위쪽에 우뚝 솟은 푸른 산, 그 사이의 서너 채의 집과 파란 하늘의 흰색 구름 등을 표현해 조용하고 서정적 풍경을 묘사하였습니다. 비교적 차분한 색채와 필치는 조선 향토색의 정서와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인성, <정물>, 1930년대
Oil on canvas, 27×40.5cm
작품<정물>은 흰색 천을 덮은 테이블 위에 사과와 청포도가 자연스럽게 놓여 있습니다. 또한, 화면은 시원하고 경쾌한 색과 형태, 구도 등의 조형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표현하고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 세잔의 화풍을 연구하고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인성, <인물(男子누드)>, 1930년대
Oil on canvas, 25.5×20.5cm
이 작품은 누드의 남성이 얼굴을 가리며 고뇌하듯 흰색 테이블에 걸터앉아 있으며, 그 앞쪽에 항아리가 배치되고 화면 왼쪽에 한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정면을 응시하지 못한 일그러진 얼굴의 형상은 식민지 사회에 대한 회피를 상징적 언어로 조형화한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이인성, <여인초상>, 1930년대
Oil on canvas, 26x21cm
작품 <여인초상>은 전체적으로 갈색조를 띠며 다소 굵고 거친 필선으로 중년의 여인 초상을 화면 가득 담아냈습니다. 오른쪽 이마와 뺨은 환한 빛을 받아 밝고 선명하지만 감긴 듯한 눈과 야무지게 꼭 다문 입은 담담한 표정의 인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인성, <장미있는 정물>, 1930년대
Oil on wooden panel, 45×37cm
이 작품은 살짝 보이는 노란 병에 흰색 장미가 꽂혀 있습니다. 장미는 빛을 받은 듯 더욱 환하고 선명합니다. 장미 주위의 잎과 줄기는 선명한 장미와 대조적으로 마치 그림자처럼 표현하여 흰색 장미를 더욱 부각하고 안정된 색감과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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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업데이트
- 2023-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