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金鍾瑛, 1915~1982, 창원)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소과를 졸업. 해방 후 서울대 미대 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썼다.
국전에는 초창기부터 활약하여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1953년 런던 국제조각대회에 출품한 이래 마닐라 국제전,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 국제전에도 참가를 하였다.
1975년 개인전을 가졌고, 작품은 추상조각을 시도하여 조각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김종영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접목하여 주체적인 한국 현대조각을 이룬 조각계의 거장이다.
이 작품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조각을 추구한 시기의 작품이다. 이 시기 서예의 조형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자연의 본래 형태를 드러내는 순수 추상작업을 추구하였다.
국전에는 초창기부터 활약하여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1953년 런던 국제조각대회에 출품한 이래 마닐라 국제전,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 국제전에도 참가를 하였다.
1975년 개인전을 가졌고, 작품은 추상조각을 시도하여 조각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김종영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접목하여 주체적인 한국 현대조각을 이룬 조각계의 거장이다.
이 작품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조각을 추구한 시기의 작품이다. 이 시기 서예의 조형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자연의 본래 형태를 드러내는 순수 추상작업을 추구하였다.
김종영, 작품 67-4, 1967
marble, 42×26×19㎝
김종영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접목하여 주체적인 한국 현대조각을 이룬 조각계의 거장입니다. 김종영의 조각은 인물과 식물, 산에서 조각의 모티브를 찾아 자연현상에서 구조의 원리와 공간의 미를 경험하고 조형의 기술적 방법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1960년대 초에는 형태의 단순화가 현격해져 자연 대상으로부터 유추된 유기적 추상과 순수조형의 기하학적 추상을 표현하였습니다. 나무와 잎사귀와 같은 식물, 사람의 얼굴과 인체 등 자연에 실재하는 대상의 형태를 모티브로 하여 유려한 곡선과 기하학적 직선을 만들어냄으로써 엄격한 형태의 구조 원리와 공간을 구축하였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불각(不刻)’의 개념, 즉 ‘깎지 않는다는 것’을 추구하였고, 이는 공간의 여백을 허용하는 것으로, 서예의 여백과도 상통하는 개념입니다.
< 작품 67-4>는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조각을 추구하며 자연의 본래 형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서예의 조형성을 조각의 입체적 조형, 특히 단순한 형태의 미니멀리즘으로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전체적인 구성이 마치 한 몸을 이룬 생명체처럼 긴밀하고 활발한 형태를 만들어낸 기하학적인 조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초에는 형태의 단순화가 현격해져 자연 대상으로부터 유추된 유기적 추상과 순수조형의 기하학적 추상을 표현하였습니다. 나무와 잎사귀와 같은 식물, 사람의 얼굴과 인체 등 자연에 실재하는 대상의 형태를 모티브로 하여 유려한 곡선과 기하학적 직선을 만들어냄으로써 엄격한 형태의 구조 원리와 공간을 구축하였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불각(不刻)’의 개념, 즉 ‘깎지 않는다는 것’을 추구하였고, 이는 공간의 여백을 허용하는 것으로, 서예의 여백과도 상통하는 개념입니다.
< 작품 67-4>는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조각을 추구하며 자연의 본래 형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서예의 조형성을 조각의 입체적 조형, 특히 단순한 형태의 미니멀리즘으로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전체적인 구성이 마치 한 몸을 이룬 생명체처럼 긴밀하고 활발한 형태를 만들어낸 기하학적인 조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자료관리 담당자
- (학예연구실 수집연구팀 :TEL.053-430-7511)
- 최근업데이트
- 2023-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