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전 시 명: 이강소 회고전 《曲水之遊 곡수지유: 실험은 계속된다》
ㅇ 전시기간: 2025. 9. 9. ~ 2026. 2. 22
ㅇ 전시장소: 대구미술관 1전시실, 어미홀
ㅇ 참여작가: 이강소(1943년생, 대구 출생)
ㅇ 전시구성: 회화, 조각, 판화, 설치, 드로잉, 아카이브 등 130여 점
이강소 회고전 《곡수지유 曲水之遊: 실험은 계속된다》
대구미술관은 한국 현대미술을 선도해온 이강소의 회고전 《곡수지유 曲水之遊: 실험은 계속된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실험미술의 현장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친 작가의 여정을 담았다. 2011년 개관 특별전 《허虛 Emptiness 11-Ⅰ-1》 이후 대구미술관이 14년 만에 선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전시는 ‘곡수지유’와 ‘실험정신’이라는 두 축을 통해 이강소의 예술 세계를 조망한다. 곡수지유(曲水之遊)는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잔이 지나가기 전에 즉흥적으로 시를 짓는 동양의 전통적 풍류 문화를 일컫는 표현이다. 이러한 풍습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전승되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기록으로는 중국 동진(東晉) 시대 서예가 왕희지(王羲之)가 353년 난정(蘭亭)에서 즐겼던 모임이 있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흐르듯 사유하고 예술을 나누는 방식은 이강소가 평생 추구해온 예술관과 닮아있다.
동아시아 전통의 미학적 가치를 구현하는 풍류 문화로서, 흐르는 물과 순간적 영감의 공간성과 시간성을 아우르는 곡수지유는 이강소의 예술에서 낙동강이라는 구체적 장소와도 이어진다. 거대한 실험실이자 예술적 원형을 품은 대구의 낙동강변은 이강소의 실험이 발현된 현장이었다. 흐르는 강물과 모래사장,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 그리고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한 시간이 새로운 미술을 향한 열망의 토대가 되었다.
‘실험정신’은 이강소의 작업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그는 1969년 신체제를 결성하고, 1970년대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에꼴드서울 등 현대미술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특히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를 창설해 한국 미술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1979년까지 다섯 차례 이어진 미술제는 한국 최초의 전국적·국제적 현대미술제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현대미술제가 확산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 시기의 실험은 이후 회화·조각·판화 등 전통 매체로 확장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전통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실험정신의 심화로 이어졌다.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 이강소의 의지는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확장되었고, 그 흐름은 지금, 2025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강소의 예술은 곡수지유의 술잔처럼 유연히 흐르면서, 실험정신이라는 힘으로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근작에서 실험의 원형으로, 다시 확장으로
전시는 현재의 이강소에서 시작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최근의 작품이 관객을 맞이한다. 여든을 넘긴 지금도 매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작업실에 들어서는 작가는 최근 작업에서 화려한 색채와 간결한 선으로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준다. 2016년 시작된 <청명> 연작은 제목처럼 혼탁함을 걷어내고 맑고 투명한 정신세계를 담으려 한 작업이다. 오리, 집, 배 같은 친숙한 이미지들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기호처럼 간결해지고 흔적처럼 가벼워졌다. 이어 2022년 <바람이 분다> 연작에서는 또 다른 전환이 나타난다. 청명의 절제 위에 다시 역동적인 붓질과 화사한 색채가 더해지며 새로운 에너지가 일어난 것이다. 특히 색채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오랫동안 무채색을 고수해온 그는 “색이 나를 유혹했다”는 고백처럼 자연스럽게 색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가장 가까운 시간의 이강소를 만난 뒤, 관객은 50년 전 실험미술의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1980년대부터 확장된 작품 세계로 돌아와 그 이후의 긴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1970년대 그의 대표작들은 한국 실험미술의 역사를 증언한다. 1975년 제9회 파리비엔날레에 출품된 <무제 1975-31>, 이른바 ‘닭 퍼포먼스’는 전시장 한가운데 살아 있는 닭을 매어두고, 그 움직임이 남긴 발자국과 깃털, 흔적들을 그대로 ‘작품’으로 선언한 작업이다.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순간을 예술로 바꾼 이 작품은 파리 현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강소를 세계 무대에 알린 중요한 사건이자 한국 실험미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으로 기록된다.
<Painting 78-1>은 1977년 이강소의 작업실 옥상 공간에서, 유리 위에 페인팅 붓질을 다양하게 칠하는 작업으로, 그 결과 모니터의 화면상으로 보기에는 모니터의 안쪽으로부터 페인팅하는 영상으로 착시를 이루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박현기가 구한 캠코더로 영상작업의 시범작업으로 동료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제작되었다. 이후 대구 K 사진 스튜디오를 대여받아 이강소와 동료들은 그 캠코더로 각자의 아이디어를 촬영했다. 화면 속에서 그는 유리판을 칠하고 선을 긋고, 때로는 점을 찍듯 붓질을 이어간다. 색이 덧입혀질수록 그의 모습은 점차 가려졌다가 사라지고, 다시 투명한 유리 너머로 드러나기를 반복한다. 30분 가까이 이어지는 이 영상은 회화를 ‘완성된 결과’가 아닌 ‘그려지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한다. 나아가 회화와 비디오라는 서로 다른 매체가 한 화면 안에서 만나며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흔적을 드러낸다. 인터넷은 물론 컬러 텔레비전조차 보급되기 전이었던 1977년이라는 시대를 떠올리면, 이 작업은 단순한 시도를 넘어 새로운 매체의 시대를 예견한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예술과 존재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살아있는 물음으로 다가온다.
전시장 중앙 섹션에서는 198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된 이강소의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 판화, 사진, 설치를 아우르는 전방위 예술가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시작한 ‘던지는 조각’은 말 그대로 던지는 행위에서 비롯되었으며, 거듭된 실험과 자연적 요소가 만나 탄생했다. 1988년 서울의 인공갤러리 개인전에서는 오리, 사슴, 배, 집 같은 도상들이 처음 등장했다. 그것이 오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도상들은 특정한 재현이 아닌 기호로 자리 잡았다. 삶과 자연, 여행과 거처를 환기하는 이 기호들은 이후 그의 회화 속에서 움직임, 흐름, 역동, 시간과 기억을 불러내는 상징적 언어가 되었다. 작품을 부르는 방식에서도 그의 태도가 드러난다. 특정한 의미에 고정되는 것을 피하고, 관람자가 자유롭게 해석하기를 바랐던 그는 오랫동안 ‘무제’ 혹은 제작연도를 병기한 무제로 제목을 붙여왔다. 그러다 1997년 <섬에서(From an Island)>를 기점으로 연작에 이름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이후 <허(Emptiness)>(2009~), <청명(Serenity)>(2016~), <바람이 분다(The Wind Blows)>(2022~)로 이어지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제목들은 특정 주제를 드러내기보다, 시와 은유처럼 작품의 여운을 확장시킨다.
이강소의 회화는 직접적인 서사를 덜어내면서도, 자연의 형세나 물의 흐름처럼 인지 가능한 이미지의 잔상을 남긴다. 그러나 그 모습은 고정된 진실이 아니라, 보는 이의 경험과 시선, 순간, 그리고 빛과 공기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멀리서 보면 고요한 산세 같다가도, 가까이 다가서면 능선이 되고, 이내 큰 비를 머금은 하늘로 변한다. 하나의 화면이 무한한 자연으로 확장되는 그의 그림은 그래서 ‘살아 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것이 이강소 회화의 묘미다.
회화의 흐름을 살펴보면, 1980년대 초반에는 추상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무작위적이고 자유분방한 붓질이 두드러진다. 1990년대 들어서면 여전히 큰 붓질이 중심을 이루면서도, 오리, 배, 집 같은 단순한 형상이 더해져 화면에 독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2009년 〈허虛 Emptiness〉 연작에 이르러서는 화면이 한층 절제되며, 서체적 획과 넓은 여백이 강조되는 정신적 기운으로 나아간다. 이강소가 말하는 ‘허’는 결핍이나 공허의 상태가 아니라, 불교적 ‘공(空)’과도 통한다. 세계가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며 흐르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잠재성, 곧 ‘없음’이 아니라 그 속에서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있음의 가능성’을 담은 것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 작업하며, 여백과 획이 어우러지는 기운을 담아냈다.
그의 붓질에는 조부로부터 이어온 서예의 기운과 집안 내력이 스며 있다. 이강소가 자신의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바로 ‘기운(氣韻)’이다. 이는 묘사나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작품 속에 배어드는 생명력이자, 작가 고유의 정신적 호흡이다. 서예에서 획의 모양보다 글씨를 쓴 이의 기운이 더 중요하듯, 그의 그림도 여백을 가르는 선, 화면을 감싸는 호흡, 색의 농담 속에 번져 나가는 미묘한 떨림까지 몸과 마음에서 흘러나온 기운의 발현이다. 그러나 그는 그 기운조차 개인의 주관에 머물기보다 자연의 일부로 세상과 무리 없이 어우러지기를 바란다.
이러한 태도는 ‘던지는 조각’에서도 드러난다. 이강소는 서구 조각의 구축적 개념, 즉 덩어리 속에서 형태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그와는 거의 반대되는 발상을 취했다. 서구적 조각이 ‘형태를 조작’하는 것이라면, 이강소에게 조각은 자연의 질료와 기운을 ‘받아들이는 행위’였다. 그가 ‘Becoming(되어감)’ 이라 명명한 작업은 흙의 성질, 불의 기세, 바람의 세기, 그날의 습도와 빛의 각도까지 자연의 요소와 함께하는 과정이다. 작가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우연들이 더해지며 작품은 ‘되어진다’. 이강소는 이를 “의식과 무의식의 합작”이라 불렀다.
이강소의 예술은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겹겹의 층위와 해석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작품은 보는 이마다 다른 길을 열어주고,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그림 앞에서는 정답을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보이는 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면 된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런 이강소의 50년 여정을 따라가며, 한 예술가가 평생에 걸쳐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온 길을 보여준다. 관객 또한 그 여정에 동행하며 자신만의 해석과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1전시장의 끝에는 1970년대 이강소가 주도한 실험미술 운동과 대구현대미술제를 중심으로 다룬 아카이브 공간이 펼쳐진다. 동료 작가들의 이름과 당대의 기록들이 다시 호명되며, 신체제,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에꼴드서울 같은 그룹의 활동, 그리고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대구현대미술제의 현장이 귀중한 자료로 되살아난다. 사진 속에는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보자"라며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벌이던 젊은 예술가들의 모습과 전시를 준비하던 뜨거운 순간이 담겨 있다. 그것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출발점이자, 새로운 실험과 담론이 태어난 현장이었다.
어미홀: 공명하는 풍경
어미홀에서는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서 열린 이강소의 첫 개인전 전시작 〈소멸〉을 중심으로 특별한 공간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갈대와 브론즈 조각이 놓이고, 서쪽 유리창으로 스며드는 오후 햇살은 그 자체로 조형 언어가 된다. 관객은 갈대 사이를 거닐거나, 강가의 선술집을 연상시키는 오래된 테이블에 앉아 머무르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21세기 대도시 미술관과 1970년대 낙동강변이 겹쳐지는 공간에서 이강소의 예술은 곡수의 물길처럼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