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포럼 V 《바깥을 향한 속삭임 Whispers Toward the Outside》
대구포럼은 동시대의 다양한 현상을 예술의 시선으로 탐구하는 대구미술관의 대표 기획전 시리즈이다. 2026년 다섯 번째를 맞는 이번 전시 《바깥을 향한 속삭임》 은 가장 낮은 목소리로 세상을 감지하는 예술의 방식을 통해 묻는다. 거대한 말들이 넘쳐나는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작은 신호들은 무엇인가.
속삭임은 아주 작은 목소리다. 그러나 듣는 이를 귀 기울이게 하고, 상대의 표정이나 몸짓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속삭임은 말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언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속삭인다. 비밀을 전할 때, 사랑을 고백할 때, 슬픔을 나눌 때, 기도할 때나 고해성사처럼 큰 소리로 말할 수 없는 진실을 이야기할 때 속삭인다. 나아가 속삭임은 사적인 언어에 머물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생각과 감정을 은밀한 대화와 이야기의 형태로 전해왔다. 검열과 억압의 시대에는 공식 기록에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이 구전과 증언을 통해 이어지며 또 다른 진실을 전해왔다. 거대한 역사는 기록된 언어로 남지만, 그 역사를 움직인 불안과 희망은 종종 작은 목소리들 사이에서 먼저 형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속삭임은 권력이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언어이기도 하다. 속삭임은 바로 그러한 변화의 흔적들을 담아내는 언어다. 그것은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이기도 하다.
전시에 참여한 여덟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언어로 그런 속삭임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타오 응우옌 판은 식민과 전쟁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기억의 잔향을 불러내고, 시린 네샤트는 권력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영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응시한다. 마리오 파이퍼는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서로 다른 시선과 증언을 통해 사회가 지워온 진실의 틈을 드러내며, 애니 닝은 공동체 안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의 불안과 자기 의심, 그리고 그로부터 열리는 해방의 몸짓을 그려낸다. 한편 김수자는 말보다 앞서 존재하는 조용한 몸의 언어를 통해 삶이 새긴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며, 변카카는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 몸의 의지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최지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빛의 잔상을 포착하며 미세한 감각의 세계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김범은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비틀어 당연함을 의심하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작업 세계를 지닌 이들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조용한 진동이 흐른다. 그것은 세상을 설명하거나 단정하기보다 익숙한 세계의 표면 아래 숨어 있던 감각과 관계들을 드러내는 움직임이다. 어쩌면 속삭임은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는 가장 섬세한 반응이자,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사회의 징후와 감정을 포착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바깥을 향한 속삭임》은 그 미세한 떨림들에 귀 기울이는 자리다. 그리고 그 속삭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세계의 질서와 경계는 어느새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쩌면 세계를 움직이는 변화는 가장 큰 목소리가 아니라, 가장 조용한 목소리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타오 응우옌 판 Thao Nguyen Phan (b. 1987, 베트남 호치민)
타오 응우옌 판은 영상, 회화, 드로잉, 설치를 넘나들며 베트남 역사에 대한 성찰과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찰을 시적인 감각으로 엮어낸다. 베트남에서 성장한 뒤 싱가포르와 미국에서 수학한 그는 역사와 기억, 이주와 정체성의 문제를 다층적인 시선으로 탐구해왔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일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협업하는 예술 집단 ‘아트 레이버(Art Labor)’의 공동 설립자로서 예술과 생태, 지역의 문화적 기억을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퍼스트 레인, 브리즈 솔레이유(First Rain, Brise-Soleil)〉는 2021년부터 진행해온 3채널 영상 설치 작업이다. 몬순 시즌의 첫 비는 벼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계절적 신호이며, ‘브리즈 솔레이유’는 근대 건축에서 강한 햇빛을 조절하기 위해 건물 외벽에 설치하는 차양 구조를 뜻한다. 작가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관계를 탐구하는 이 작품에서 첫 비와 브리즈 솔레이유를 과거와 현재, 식민의 기억과 개인의 감각이 드나드는 경계이자 통로로 은유한다.
영상은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 속에 남겨진 기억과 감정의 흔적을 자연의 리듬과 유려하게 교차시키며, 역사가 지나간 자리에도 공기처럼 남아 있는 감각에 가까이 다가간다. 열대 몬순의 풍경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젊은 연인의 사랑과 그 상실의 열매인 두리안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베트남 건설 노동자의 회고가 브리즈 솔레이유를 매개로 펼쳐진다. 메콩강이 수많은 지역과 문화를 이어주듯, 이 영상은 비와 빛을 따라 서로 다른 풍경과 기억, 인간과 비인간의 세계를 조용히 연결하며 역사 이후에도 남아 있는 감각의 층위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시린 네샤트 Shirin Neshat (b. 1957, 이란 카즈빈)
시린 네샤트는 사진, 영상, 영화를 중심으로 여성성과 남성성, 이슬람과 서구,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전통과 현대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탐구해온 작가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의 정치적·사회적 변화는 그의 예술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란 여성의 삶과 정체성은 오랫동안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 왔다. 시린 네샤트는 자신의 예술이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이기보다 “인간성을 위한 외침”에 가깝다고 말한다.
싱글 채널 비디오 〈두 유 데어! Do U Dare!〉는 시린 네샤트의 신작 삼부작 가운데 한 편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영상은 젊은 이란 여성 나심(Nasim)의 여정을 따라간다. 뉴욕의 이민자 거주 지역을 걷던 나심은 공허한 연설을 반복적으로 늘어놓는 정치인과 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군중을 마주한다. 그들을 지나쳐 들어간 가발 가게에서 나심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와 조우하고, 새로운 힘과 의지를 발견한다. 이후 다시 광장으로 돌아온 그는 연설하는 정치인 앞에 선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영상은 끝을 맺는다.
〈Do U Dare!〉는 권력과 선동,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세계 속에서 한 개인이 스스로의 주체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우화적으로 그려낸다. 시린 네샤트는 나심의 여정을 통해 오늘날의 정치적 스펙터클과 정체성의 연출을 응시하며, 우리를 둘러싼 환영과 두려움을 직시할 용기가 있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스스로 해방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마리오 파이퍼 Mario Pfeifer (b. 1981, 독일 드레스덴)
마리오 파이퍼는 법과 미디어, 인종주의, 제도적 권력이 어떻게 하나의 ‘진실’을 구성하는지를 탐구해온 시각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이다. 그의 작업은 특정 사건과 공동체,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장기간의 리서치에서 출발하며, 사회 안에서 쉽게 가려지거나 배제되는 목소리를 드러내고, 진실이 생산되고 정당화되는 방식을 질문해왔다.
〈어게인(Again - Noch Einmal)〉은 2018년 제10회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처음 발표된 대표작이다. 2채널 영상은 독일 동부에서 실제 발생한 난민 폭행 사건을 바탕으로, 스튜디오에 재구성한 슈퍼마켓 세트와 다양한 증언, 토론을 통해 사건을 둘러싼 여러 시선과 해석을 드러낸다. 배심원단의 반응, 뉴스 화면과 토크쇼 형식의 구성, 영화적 카메라 워크가 교차하며 관객은 사건을 하나의 이미지이자 사회적 구조로 경험하게 된다. 독일 사회에 정착한 다양한 배경의 이민자 열 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사건을 접한 뒤 떠오른 감정과 생각, 그리고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작품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그들이 보여주는 당혹감과 공감, 망설임과 침묵은 이 작품을 단순한 사건의 재구성을 넘어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작가는 법과 제도가 충분히 응답하지 못한 사건을 예술의 장으로 다시 불러내며, 진실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는지 질문한다. 이 작업은 사건을 바라보고 기억하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동시대 사회가 마주한 타자성, 편견 그리고 공존의 문제를 보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성찰하게 만든다.
애니 닝 Annie Ning (b. 1997, 중국 쑤저우)
애니 닝은 영화, 상업 영상, 연극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차세대 영화감독이다. 중국 쑤저우와 미국을 오가며 성장한 그는 서로 다른 문화와 감각이 교차하는 장소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긴장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단편 영화 〈외래 침입종(Invasive Species)〉은 2023년 팜 스프링스 국제 단편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에 초청되며 널리 주목받은 대표작이다.
영화는 푸른 전원에 자리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배경으로, 공동체 안에서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젊은 사운드 아티스트 매기(Maggie)의 시선을 따라간다. 공동 식사를 둘러싼 어색한 긴장, 매끄럽지 않은 대화,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타인의 시선 사이의 충돌이 평화로운 자연 풍경 속에서 오히려 더욱 선명한 불협화음으로 드러난다. 특히 백인 중견 작가들 사이에서 아시아계 신진 작가가 경험하는 미묘한 소외감과 자기 의심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 이곳에 속할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되묻게 만든다. 식사 시간 풍경은 이러한 갈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며, 작품 제목인 ‘외래 침입종’은 바로 이러한 소외와 불안의 감각을 은유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매기의 작은 저항과 해방의 몸짓은 공동체의 질서에 미세한 파장을 일으킨다.
〈외래 침입종〉은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끊임없이 어긋나는 감정의 결을 따라간다. 영화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과 침묵,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공동체의 안과 밖을 오가는 존재의 불안한 감각과 끝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한 인물의 내면을 그려낸다.
김수자 Kimsooja (b. 1957, 대구)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나 파리와 뉴욕을 비롯한 세계 여러 도시에서 활동해온 김수자는 보따리와 바느질을 작업의 중심 언어로 삼아 몸, 이동, 정체성, 관계의 문제를 다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손의 언어를 담은 사진 연작 〈연역적 언어(Deductive Language)〉, 지문과 머리카락을 통해 삶의 시간과 개인의 고유한 삶을 보여주는 〈시간의 위상학(Topology of Time)〉과 〈몸의 기하학(Geometry of Body)〉, 그리고 영상 작품 〈앨범: 허드슨 길드(An Album: Hudson Guild)〉를 선보인다.
손은 오랫동안 김수자의 작업 세계를 이루어온 중요한 소재이다. 바느질이라는 여성의 노동과 일상의 행위에서 출발한 손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가장 직접적인 도구이자 소통의 방식이다. 〈연역적 언어〉에서 손들은 맞잡고, 스치고, 얽히며 말없이 관계를 만들어간다. 언어보다 앞서 이루어지는 몸의 움직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교감의 순간을 보여준다. 〈시간의 위상학〉과 〈몸의 기하학〉에서는 더욱 섬세한 시간의 결이 드러난다. 선들이 반복되고 교차하는 지문은 한 사람만이 지닌 고유한 흔적인 동시에 몸속에 내재한 질서와 리듬을 드러낸다. 오랜 시간 수집한 머리카락 역시 한 사람과 함께 자라온 시간의 기록이다. 가늘고 연약한 선들이 겹쳐지고 이어지며 만들어내는 형상은 개인의 삶이 서로 연결된 더 큰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앨범: 허드슨 길드〉는 뉴욕 허드슨 길드 시니어센터에서 생활하는 이주민 노인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 작품이다. 화면 속 인물들은 카메라 앞에 조용히 앉아 정면을 응시한다. 특별한 사건도 설명도 없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낯선 곳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어 온 시간과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손과 지문,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들. 김수자는 몸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모습들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시간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변카카 ByunKaka (b. 1985, 울산)
변카카는 조각과 설치,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작업한다. 그의 작업은 건강, 운동, 젊음, 장수에 대한 인간의 욕망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익숙한 사물들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결합하며 삶과 죽음, 변화와 시간에 대한 질문을 유머와 아이러니 속에 풀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시간의 증상들〉은 시간 앞에 선 인간의 몸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공원에서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노년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 작업을 구상했다.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는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 몸의 풍경이 펼쳐진다. 작품 속 바위는 이러한 몸의 은유로 등장한다. 전시장에는 약수가 나오는 바위, 눈물을 흘리는 바위, 운동기구를 매단 바위가 있다.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비현실적인 풍경이지만, 그 안에는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고 싶고, 가능한 한 오래 삶을 이어가고 싶은 인간의 소망이 스며 있다. 관람객은 작품 사이를 거닐며 약수를 마시고 운동기구를 사용하며 바닥에 깔린 코르크 가루를 밟을 수 있다. 지압길을 연상시키는 코르크 가루는 전시장을 하나의 건강공원처럼 바꾸어 놓으며, 관람객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되어 그 풍경 속을 거닐게 한다.
〈시간의 증상들〉 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바위가 오랜 시간 풍화되고 마모되며 흔적을 품어가듯 인간의 몸 역시 시간 속에서 천천히 변해간다. 변카카는 이를 비극이나 상실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공원 운동기구에 매달린 노년의 몸들 속에서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생의 풍경을 발견한다. 약수가 흐르고 눈물을 흘리며 운동기구를 매단 바위들은 웃음과 연민, 활력과 피로가 뒤섞인 존재가 되어, 늙어감과 살아감이 사실은 같은 이야기임을 들려준다.
최지목 Choi Jimok (b. 1981, 서울)
최지목은 회화를 비롯해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해왔다. 독일에서 유학하며 오랜 기간 활동한 그는 신체적 경험과 인식의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왔고, 귀국 이후에는 이를 빛과 지각의 문제로 확장하며 회화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작업의 중심에는 빛이 있다. 그는 빛이 눈과 신체에 남기는 감각의 흔적에 주목하며, 시각적 경험이 어떻게 이미지로 형성되는지를 탐구한다. 그에게 회화는 물질적 재현이 아니라 감각이 이미지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작가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이 역설적인 태도는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잔상, 강한 빛을 본 뒤 시야에 남는 색과 형태 같은 찰나의 감각을 포착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빛의 잔상을 포착하는 일은 미세한 감각의 세계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떠오르는 석양〉, 〈부재의 빛〉, 〈시선의 잔영〉 연작은 이러한 탐구의 결과물이다. 가령 화면에 번지는 붉은색과 그 위에 떠오르는 청록과 보라의 형상들은 실제 풍경이나 사물이 아니라 강한 빛이 사라진 뒤 망막 위에 남는 흔적들이다. 그에게 빛은 대상을 보여주는 수단이 아니라 눈 안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하나의 현상이다. 그는 특수 조명과 디지털 장치를 활용해 시신경 위에서 발생하는 잔상의 변화를 기록하고, 이를 에어브러시 기법으로 캔버스에 옮긴다. 보는 순간 자체를 붙잡아 망막의 사건을 회화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빛의 잔상을 회화로 구현한 작품들과 함께 신작 설치 〈Das Bild〉를 선보인다. 강렬한 붉은 빛을 내뿜는 대형 화면 앞에 선 관람객은 그 빛과 온몸으로 마주하게 된다. 눈을 감는 순간, 화면 속에서 보았던 잔상들이 망막 위에서 다시 떠오른다. 작가가 회화로 포착한 감각은 이제 관람객의 시야 안에서 새로운 잔상으로 되살아난다. 최지목의 작업은 우리가 본다고 믿는 세계가 감각과 지각이 만들어낸 잠정적인 이미지일 수 있음을 환기한다. 그의 작업 앞에서 보는 행위는 더 이상 당연한 감각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온다.
김범 Kim Beom (b. 1963, 서울)
김범은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물의 쓰임새와 말의 의미, 그리고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살짝 비틀어 놓는다. 현실과 이미지, 경험과 기억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온 그는 유머와 역설,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노란 비명 그리기〉 에서 한 남성이 흰 캔버스에 노란 색으로 붓질을 할 때마다 비명을 지른다. 색을 칠하는데 왜 소리를 지르는 걸까. 그런데 보다 보면 묘한 감각이 생긴다. 노란색이 점점 시끄럽게 느껴지고, 비명 소리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진다. 시각과 청각이 서로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남성은 친절한 강사처럼 관객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다가도, 온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른다.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 에서는 강사가 돌과 배 같은 사물들에게 말을 가르치고 행동하는 법을 교육한다.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어딘가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정해진 답을 배우고 규칙을 익히는 풍경은 교육의 의미와 함께 사회가 개인을 길들이는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정말 교육받고 있는 것은 돌과 나무, 배일까, 아니면 우리 자신일까?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어느새 낯선 질문으로 바뀌고,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믿으며 이해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그리려는 시도, 교육받는 사물들. 김범의 작업은 장난스럽고 엉뚱해 보이지만, 보고 난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의 작업이 남기는 작은 의심은 집요하게 우리 곁을 맴돌며,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에 미세한 균열을 낸다.